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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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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 동산!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성 동쪽 바깥, 기드론 계곡 넘어에 있는 감람산 기슭에 있습니다. 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예루살렘성, 동쪽에는 감람산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 감람산에 머무셨습니다. 그가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드셨습니다. 그 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고, 그곳에서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V.38.41a)

예수님은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고, 그의 땀은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흘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고 싶었지만, 육신이 약하고, 피곤하여 잠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보셨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V.41b)

예수님은 그를 잡으러 칼과 몽치를 들고 온 무리를 보셨을 때,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깨우셨습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V.46)

예수님은 그들에게 붙잡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넘겨졌고, 그의 집 뜰에서 첫 번째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첫 번째는 육신을 입고 있는 자신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 아픔을 아버지께 아뢰며, 간절히 기도하는 예수님과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잠들어 있는 제자들의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그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20,20-21),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배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V.22-23)

예수님은 그가 마시게 될 고난의 잔을 제자들도 피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잡히던 밤에 제자들은 모두 그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만은 결코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밤에 예수님을 떠났고, 심지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마음과 자신의 현실 사이의 거리를 보여줍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들을 불러, 나를 잡으러 온 자들을 물리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26,54.56)

그는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을 입고 있는 자신이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들의 마음과 육신의 연약함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잠들었습니다. 잠에서 깬 그들이 칼과 몽치로 무장한 로마군병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당황하였고, 그 중 한 명은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칼을 잡은 사람은 베드로였고, 귀가 잘린 대제사장의 종의 이름은 말고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 주시며, 말씀합니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 18,1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과 육체의 연약함과 정욕에 끌려 다니는 우리들의 현실 사이의 거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로 그의 제자 중에 한 명이 칼을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들을 대항하려 했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의 손에 들려진 칼은 악한 무리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도구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는 모습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명령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 (레 24,19-20)

이 말씀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38-42)

이렇게 살면, 마음이 썩고 결국은 화병으로 죽음에 이르게 될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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