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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2015.09.21 01:53

기도의 본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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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진실한 마음을 드리는 것

 

I 시편 109편

이 시편은 자신을 핍박하고 멸시하는 대적자들에게, 하나님이 복수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이다. 저자는 대적자들로 인해 가난하고, 궁핍하게 되었고, 마음이 찢기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려 ‘그들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을 간구한다. 그럼에도 대적자들은 오히려 그의 선한 마음을 조롱하며, 악한 입과 거짓된 혀로 그를 쉬지 않고 공격하였다. 극심한 고통과 참을 수 없는 모욕은 그의 이성과 인내심을 마비시켰고, 그는 기도 중에 대적자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그들을 가만히 두고 보시는 하나님까지도 원망하게 된다. "하나님, 왜 잠잠하십니까?"

 

II 욥기 10장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직하게 살았다. 그러나 사탄의 공격으로 가족과 재산 그리고 자신의 건강까지도 잃어버린다. 이러한 고난 중에도 욥은 하나님 안에서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1,20-22)

그러나 고난들이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같이 그에게 몰려와서, 그가 더욱 비참하게 되었지만, 그의 고통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친구들은 그를 찾아와 고통받고 있는 욥을 죄인 취급하였다. 이 때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욥기 10장은 이러한 상황에서 욥이 탄식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기도이다. 

“하나님, 왜 나를 괴롭게 하십니까?” (V.2)

그의 기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마음은 연달아 밀어닥치는 고난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는 하나님이 고통받고 있는 자신과 함께 해 주실 것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놓아줄 것을 호소한다.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이제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지 전에 그리하옵소서.” (V.20-21)

이 기도는 그의 고통이 죽음보다 더 쓰린 상태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III 기도란 무엇인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그들이 겪는 고난과 고통을 참을 수 없을 때,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으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탄식하는 모습은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1. 하나님께 마음 열고, 그 마음을 드리는 것

요한계시록은 기도를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 표현한다. 이것은 기도 그 자체가 하나님과 우리들에게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는 감사와 기쁨을, 때로는 간구와 서원을, 때로는 답답함과 탄식의 마음을 드린다. 시편 51편 17절은 하나님은 우리들의 꾸밈이 없는, 진실된 마음을 받으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우리들은 때때로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이것은 자녀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님께 서운한 마음을 가질 때와 유사하다. 하나님은 이러한 때에라도 기도를 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러한 환경을 통해 그를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이다. 고난을 당하며 우리들이 탄식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신다.

 

2. 기도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아가기 위한 것

기도는 자기암시나 자기확신과는 다르다. 기도를 통해 우리들이 바라는 상황을 그려내고, 그것을 향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성령을 계속해서 간절히 구하며, 응답해 주심을 믿고 감사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이것은 하나님께 구하는 자들의 모든 요구들을 일방적인 그의 능력으로 모두 들어주신다는 약속은 아니다.

우리의 기도가 때때로 독백이 될 때도 있다. 자신의 사정과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지만,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을 때이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이렇게 비난하셨다.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 23,3-4)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선생이라 칭함을 받는 것과 높은 자리에 앉아 존경 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기 원했고, 특히 죄인들이나 세리들처럼 경건하지 못한 자들은 차별하였다. 예수님은 그들과 달랐다. 그는 규율을 정하고, 그의 제자들을 일방적으로 훈련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일은 제자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도우셨다. 그는 죄인들과 세리들을 차별하지 않으셨고, 그들의 친구라고 불리우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이 우리들과 생동감 있는 관계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들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하시기 원하신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이해하고, 그를 위해 일하는 그의 동역자가 되고, 역으로 우리의 계획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의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는 탄식기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기 원하셨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마 26,38)

그는 마음을 짖누르는 십자가의 고통을 느끼며, 괴로운 마음으로 기도한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 14,36)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숨김 없이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는 자신의 마음을 숨김 없이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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