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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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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생활의 이상과 현실 ( 17,11-19)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있는 한 마을을 지나실 때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그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그들은 아직 몸이 치료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길을 가는 도중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 자기가 나은 것을 느끼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그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당연히 감사해야 할 다른 아홉 사람을 예수님이 찾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았던 아홉 사람,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의 성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료를 체험하며 큰 소리로 기뻐하였겠지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주석가는 이 말씀을 인간은 참으로 감사할 줄 모른다고 해석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 아이들은 부모의 그늘 아래 보호받고, 그들의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공급받지만, 그들은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사람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친구들에게 감사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친구들과 연결되어, 그의 존재의 의미를 부여 받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소중함에 대해 마음 깊이 감사하지 않는다.

세 번째 인간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하시고, 오늘도 은혜 안에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해 주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 즐거이 감사하지 않는다.

왜 사람은 당연히 감사해야 할 상황에서 그리고 감사해야 할 분들께 감사하지 않을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은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 된 우리들이 그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기뻐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기쁨 가운데 감사의 생활을 영위하기 원하십니다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당연히 감사해야 할 상황 그리고 감사해야 할 분들께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며 살 수 있을까? 이것이 감사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간격을 좁힐 수 있을까요?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자신에 대한 인식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종이 그가 맡은 일감을 하루 종일 힘겹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때 주인은 종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겠느냐? “너는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너는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너는 먹고 마셔라라고 하지 않겠느냐?“

이러한 상황에도 종의 마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17,10)

만약 종이 마음을 높여 주인과 같이 되려 한다면, 그는 결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마음을 낮춰 종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 20,28)

 

2. 사명에 대한 인식

바울 사도는 그의 사명을 위해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고후 11,23ff)

인간의 성품으로는 결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바울 사도는 이러한 고난을 감사로 이겨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는 죄인 중의 괴수였던 자신을 예수님이 그의 은혜로 구원하셨다는 감사가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고난과 시련 중에 오히려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수고와 고난은 이 땅에 오셔서 수고하시고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사역에 그도 동참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히려 그가 받은 고난을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난과 시련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진 희망은 결코 그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3)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욥은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어 버렸음에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 1,21)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봄, 여름, 가을을 지나는 것처럼 성장하고, 노력의 대가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며 살 때도, 인생에 추운 겨울이 닥친 것처럼 파종하지도 수확을 하지도 못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이 때에도 감사할 수 있다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감사의 삶을 살지 못할까?‘

그 이유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높여 다른 사람이 자신을 섬겨주기를 바라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명에 대한 무지로부터 올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자의 마음이 될 때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 사명을 위해 나아갈 때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망각 때문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세어본다면 나의 나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받은 은혜를 소중히 마음에 간직한다면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신 하나님, 무지하고 어리석은 우리들과 항상 동행하시며 인내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주위에서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의 삶을 붙들고 있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감사하기 위해 돌아온 이방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V.19)

예수님은 그에게 감사하러 찾아온 사마리아 사람의 몸과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셔서 온전한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마음에 감사보다 불평이 더 큰 자리를 잡고 있다면 그것은 마음의 병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약이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치료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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